지역 특산물의 역사

경남 고성 갯벌 굴, 선사시대 패총과 함께한 조개 문화의 기원

insight-2007 2025. 7. 26. 09:25

바다와 인간의 공존이 만든 문화, 고성 굴과 조개의 시간 여행

한국의 해안선을 따라 형성된 수많은 갯벌은 단순히 해양 자원의 보고일 뿐만 아니라, 인류가 바다와 어떻게 공존하며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박물관과 같다. 그중에서도 경상남도 고성 지역은 그 독특한 갯벌 생태계와 함께 선사시대부터 조개와 굴을 중심으로 한 해양 식문화의 기원지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고성의 바닷가에서는 조개껍데기 무덤인 ‘패총’이 대규모로 발견되었는데, 이 패총 속에는 굴 껍데기와 조개류가 다량으로 남아 있어, 고성 사람들이 수천 년 전부터 해양 생물을 식재료로 삼고, 나아가 생활문화로 확장해왔음을 보여준다.

선사시대 패총과 함께한 경남 고성 갯벌 굴

 

고성 굴은 단지 지역 특산물이 아닌, 한반도 해양 문화의 원형을 간직한 문화유산적 가치를 지닌 식재료다. 굴은 현대 한국인의 식탁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해산물이지만, 그 뿌리는 매우 깊고도 오래된 것이다. 조선시대의 문헌에서도 고성 지역에서 굴을 채취하여 궁중에 진상하거나 지방 행정의 세금으로 활용한 기록이 발견된다. 뿐만 아니라, 고성의 굴은 일반적인 굴과는 다른 특징을 지녔다. 조수 간만의 차가 크고, 갯벌의 미네랄 함량이 높아 속이 꽉 찬 데다 비린내가 적고 단맛이 강하다. 이는 고성 갯벌이라는 특별한 환경이 만든 선물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고성 굴을 중심으로, 이 지역 해양 문화의 역사적 흐름을 살펴보고자 한다. 선사시대 패총의 증거를 바탕으로 고성의 조개 문화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고성 굴이 역사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했으며, 또 오늘날 지역 경제와 관광 자원으로 어떻게 재조명되고 있는지 구체적이고 깊이 있게 탐구할 것이다.

패총이 말해주는 고성의 굴 채취 문화, 그 기원과 확산

패총은 인류가 남긴 가장 오래된 음식 문화의 흔적이다. 인간은 사냥과 채집을 통해 생존하던 시대부터 조개류를 주요한 식량 자원으로 활용했으며, 그 껍데기를 일정한 장소에 쌓아놓으면서 오늘날 우리가 보는 ‘패총’이라는 형태를 남겼다. 고성 지역은 특히 경상남도 남해안 중에서도 가장 많은 패총이 분포한 지역 중 하나로, 수많은 조개류와 함께 굴 껍데기가 대량 출토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학계에서는 고성의 패총을 통해 한국인의 해양 채취문화가 청동기 이전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대표적인 고성의 패총 유적으로는 죽계리 패총, 하이면 내곡리 패총, 개천면 해안선 일대의 소규모 패총들이 있다. 이들 유적에서는 굴뿐 아니라 가리비, 홍합, 소라, 참조개 등 다양한 조개류가 혼재되어 발견되며, 특히 굴 껍데기의 양이 월등히 많다는 점에서 고성 사람들이 굴을 주된 식량 자원으로 활용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굴 껍데기 내부에는 열을 가한 흔적이나, 굽기 위한 석기 도구가 함께 발견되기도 한다. 이는 단순한 수집을 넘어서 요리와 가공, 나아가 저장의 기술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고성 패총 속에서 발견된 굴의 분포는 해안가뿐 아니라 내륙과 가까운 지역까지 확장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히 해변가에서만 소비되던 음식이 아니라, 일정한 유통 경로를 통해 내륙 지역으로도 운반되고, 공동체 단위로 활용되었음을 의미한다. 굴은 단백질과 아연, 칼슘이 풍부하여 영양식으로 매우 유용하며, 특히 성장기 어린이나 노약자에게는 중요한 영양원이었다. 고성 사람들은 굴을 삶고 굽고, 껍데기를 도구로 활용하며 조개 문화의 기틀을 다졌다.

이처럼 고성의 패총은 단순한 고고학적 유적을 넘어서, 고성 굴 문화의 기원과 확산 경로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다. 굴을 단순한 해산물이 아니라 선사인의 삶과 연결된 식량 전략의 중심축으로 바라본다면, 고성 굴의 문화적 위상은 훨씬 더 크고 깊게 다가온다.

고성 굴, 조선시대 기록으로 보는 황실 해산물의 전통

고성 굴은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지방 특산 해산물’로서 본격적으로 문서화되기 시작했다.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조선의 대표적인 지리·행정 문헌에는 고성 지역에서 굴이 풍부하게 채취된다는 기록이 여럿 등장한다. 특히 고성 굴은 ‘겨울철 진상품’으로 지정되어 한양의 왕실이나 지방관청에 공급되었고, 이는 단순히 지역 자원의 유통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식재료 관리 체계의 일부로 편입되었음을 의미한다.

기록에 따르면 겨울이 되면 고성의 굴 채취민들은 물때를 계산하여 굴을 채취한 뒤, 일정한 양을 고을 단위로 모아 ‘공납’ 형태로 중앙정부에 납품했다. 이때 굴은 소금물에 담가 운반되었고, 얼음이나 짚을 이용한 일종의 ‘저온 유통 방식’이 사용되기도 했다. 이처럼 조선시대의 고성 굴 유통은 이미 체계적인 저장과 보관, 운송 시스템을 기반으로 작동하고 있었고, 이는 굴이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국가적 식자원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를 갖는다.

흥미로운 사실은, 당시 문신이나 유생들의 기록 속에 고성 굴을 찬양하는 문장이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다. 굴의 단맛, 탱탱한 육질, 그리고 바다향을 머금은 풍미는 고급 음식으로 분류되었으며, 특별한 날이나 손님 접대용으로 애용되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고성 굴을 염장하여 저장식으로 활용하였고, 굴젓(석화젓)이라는 형태로 한양까지 판매되기도 했다.

또한 조선 후기에는 고성 굴을 매개로 한 상업 네트워크도 활발해졌는데, 특히 진주, 통영, 마산 등과의 교역에서 굴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장시(場市)에서는 굴을 즉석에서 삶아 판매하거나, 굴 튀김이나 전으로 가공해 파는 좌판이 많았다. 이는 고성 굴이 이미 단순한 자연식품을 넘어 지역의 대표 브랜드로 성장해 있었다는 증거다.

고성 굴은 이렇게 수백 년 동안 조선의 해산물 식문화를 풍요롭게 만들었고, 단순히 물리적 영양 공급을 넘어서 문화적·상징적 가치까지 갖춘 해산물로 기능했다. 왕실의 밥상부터 민가의 젓갈까지, 고성 굴은 조선의 해산물 문화에서 뿌리 깊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지역 정체성과 함께 진화한 고성 굴의 현대 문화

오늘날 고성 굴은 과거 조선시대 진상품으로서의 명성에만 머무르지 않고, 현대의 지역 정체성과 관광 자원을 결합한 지역 브랜딩의 핵심 소재로 재탄생하고 있다. 굴은 여전히 고성의 주요 어업 품목 중 하나지만, 단순한 수산 자원을 넘어 문화와 결합된 체험형 특산물로서 더욱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고성군은 매년 겨울철 ‘고성 굴 축제’ 또는 ‘갯벌 해양 체험 행사’를 통해 방문객들이 직접 굴을 채취하고, 굴구이·굴전·굴밥 등 다양한 요리를 맛보는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고성군의 해안 지역, 특히 하이면, 회화면, 하일면 일대는 양식장과 자연 갯벌이 공존하는 지역으로, 굴 채취와 양식이 모두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이 지역의 갯벌은 타 지역과 달리 미세한 점토질과 유기물이 풍부하여 굴의 성장 속도와 품질이 뛰어나다. 지역 주민들은 조석의 간만차를 활용해 전통적인 방법으로 굴을 채취하며, 일부는 친환경 양식 기술을 적용해 수질 개선과 지속가능한 굴 생산을 실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과거 조선시대 굴 채취법을 복원하거나 전통 도구를 현대화하여 소개하는 등, ‘문화 보존과 산업 활성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또한 고성의 초중학교, 문화센터, 평생교육원 등에서는 ‘굴 문화 체험’ 혹은 ‘조개 이야기 교실’이라는 명칭으로 어린이와 청소년 대상의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여기서는 단순한 굴 채취 체험을 넘어서, 고성 패총과 선사시대 해양문화, 그리고 굴의 생태적 가치까지 통합적으로 다룬다. 이는 고성 굴이 단순한 식재료를 넘어 지역 정체성과 정서적 유산의 매개체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주민들 또한 고성 굴에 대한 인식을 ‘소득원’에서 ‘지역의 자랑’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굴은 타 지역과 달리 신선도와 저장성이 뛰어나 도매 시장에서도 높은 가격에 거래되며, 이를 활용한 가공식품 사업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고성산 굴을 활용한 굴소스, 굴즙, 굴액젓 등이 온라인 쇼핑몰과 로컬푸드 마켓을 통해 판매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굴을 주원료로 한 건강기능식품 브랜드도 등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고성군은 지역 청년 창업가들과 협업하여 굴 관련 문화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 굴을 주제로 한 동화책, 애니메이션, 관광기념품, 그리고 굴 모양을 형상화한 캐릭터 상품까지 기획되면서, 고성 굴은 단지 ‘먹는 것’을 넘어 ‘보는 것’, ‘즐기는 것’으로 진화하고 있다. 굴이 가진 역사성, 생태적 가치, 식문화적 다양성이 융합되며 고성 굴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지역 문화의 중심에 서 있다.

고성 굴의 세계화 가능성과 지속 가능한 미래

고성 굴은 국내에서의 명성에 이어, 이제는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며 세계 해산물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대하고 있다. 굴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식재료이자 고급 해산물 중 하나로, 특히 아시아권과 유럽, 북미 시장에서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 가운데 고성 굴은 청정 지역에서 생산된 프리미엄 굴로 브랜드화되며, 수출 가능성이 매우 높은 품목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고성 굴은 일본, 홍콩, 대만, 싱가포르를 중심으로 수출되고 있으며, 점차 미국, 캐나다, 호주 시장으로 진출이 확대되고 있다. 고성군은 농림축산식품부 및 해양수산부와 협력하여 해외 수출 전용 위생 가공장을 설립하고, HACCP(식품안전관리인증)지리적 표시제(GI) 등록을 통해 고성 굴의 고유성과 안전성을 확보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수출이 아니라, 고성 굴의 브랜드화 전략을 의미하며, 한반도의 굴 문화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토대를 만드는 과정이다.

특히 고성 굴은 친환경 양식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 측면에서도 경쟁력을 갖고 있다. 해양 생태계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생산성을 유지하는 방식을 도입하고 있으며, 해양 미세먼지, 플라스틱 문제 해결을 위한 친환경 부표 도입, 유기물 기반의 먹이 제공 등 다양한 실험이 병행되고 있다. 이를 통해 고성 굴은 단지 ‘많이 생산되는 굴’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해양자원의 모델 케이스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고성군은 ‘굴 관광특구’ 조성 사업도 준비 중이며, 이를 통해 굴을 매개로 한 체류형 관광 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굴 테마박물관, 굴 미식 체험관, 굴 요리 쿠킹클래스, 굴 스파 등 다양한 융복합 프로그램이 기획되고 있다. 이는 고성 굴의 스토리텔링 자산과 역사성을 기반으로 한 문화 관광 전략이며, 단순한 먹거리에서 문화 산업으로 확장되는 새로운 가능성이다.

또한 국내외 미식 트렌드에서도 고성 굴은 점차 ‘독립적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유명 셰프들이 고성 굴을 원료로 사용한 레시피를 개발하거나, 고성 굴을 테마로 한 팝업 레스토랑이 서울, 부산 등 대도시에서 운영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는 고성 굴이 한국을 대표하는 해산물로서의 지위를 갖추어가는 과정이며, 동시에 선사시대부터 이어져온 한국인의 굴 문화가 세계 무대에서 재조명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궁극적으로 고성 굴은 단순한 ‘지역 특산물’이 아닌, 한국 해양문화의 상징이자 글로벌 식자원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 고성의 바다와 갯벌이 수천 년에 걸쳐 길러낸 굴 한 알은, 그 자체로 생태적 균형, 역사적 전통, 문화적 정체성, 경제적 가치가 집약된 ‘한국 해양문화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