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특산물의 역사

강릉 초당두부, 해풍과 바닷물이 만들어낸 고유의 식문화

insight-2007 2025. 7. 1. 09:06

강릉 초당두부는 왜 바닷물을 간수로 삼았을까?

강릉을 떠올릴 때 많은 이들이 바다, 커피, 경포대를 먼저 말하지만, 진짜 강릉의 속맛을 알고 싶다면 반드시 마주해야 할 음식이 있다. 바로 ‘초당두부’다.

해풍과 바닷물이 만들어낸 강릉 초당두부


겉보기엔 평범한 두부처럼 보이지만, 초당두부는 만드는 방식부터 다르다. 바닷물을 끓여 만든 천연 간수로 두유를 굳히고, 강릉 특유의 해풍이 불어오는 기후에서 숙성되는 이 두부는, 수백 년에 걸쳐 강릉 사람들의 손과 정성, 그리고 자연과 함께 만들어진 음식이다.

특히 초당두부는 단지 지역 전통 음식이 아니라, 조선시대부터 이어져온 자연 발효와 절제된 식생활, 건강식 문화가 결합된 고유 식문화다.
이 글에서는 초당두부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선시대 어떤 의미를 가졌으며, 오늘날까지 어떻게 문화와 산업으로 이어져 왔는지를 역사적 흐름 속에서 깊이 있게 살펴본다.

조선시대의 식문화와 초당 허엽의 삶 속에서 태어난 두부

초당두부라는 이름은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학자였던 허엽(許曄)의 호 ‘초당(草堂)’에서 유래했다. 그는 강릉에서 관직을 사임하고 은거하며 초가삼간을 지어 조용한 삶을 살았고, 그곳에서 검소하고 건강한 식생활을 실천했다.
허엽은 당시에도 유명한 청빈한 선비였으며, 자연 속에서 심신을 다스리는 삶을 지향했다. 그가 즐겨 먹었던 음식 중 하나가 바로, 직접 만든 두부였고, 그 방식이 초당두부의 시초가 되었다는 설이 지금까지 전해진다.

조선시대 두부는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었다. 절제와 청렴, 건강과 수행을 상징하는 음식으로, 유교적 이상과도 맞닿아 있었다. 특히 유학자들은 육식을 피하고 식물성 단백질을 중심으로 한 ‘도(道)의 식단’을 중시했는데, 두부는 그 핵심에 있었다.
허엽은 집 앞 동해 바닷물을 간수로 끓여서 간수로 사용했고, 콩을 빻아 두유를 만들고, 천천히 굳혀 부드럽고도 단단한 두부를 완성했다. 바닷물 속 미네랄과 염분은 천일염보다 더 정갈한 맛을 주었고, 이는 강릉 두부만의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에 초당두부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강릉 지역 사대부 가문에서 해풍을 활용한 해양 발효식이 성행했다는 문헌을 통해, 이 두부가 특정 가문과 지역 공동체를 중심으로 퍼졌음을 유추할 수 있다.

바닷물 간수와 강릉 해풍, 초당두부를 특별하게 만든 자연 환경

초당두부는 다른 지역 두부와 달리 ‘바닷물 간수’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유명하다. 일반 두부는 대체로 천일염 간수를 쓰거나 화학적 간수를 사용하지만, 초당두부는 동해 바닷물을 받아 끓여서 천연 간수를 만든다. 이 간수에는 마그네슘, 칼슘, 칼륨 등 풍부한 해양 미네랄이 함유되어 있어, 두부의 맛이 더욱 고소하고 감칠맛이 뛰어나며, 조직이 단단하면서도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는 특징을 가진다.

강릉은 바닷바람이 강하고 습도가 낮아, 두부를 숙성시키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초당 지역은 바다와 가까우면서도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 덕분에,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해풍이 두부의 수분과 온도를 조절해준다. 이는 두부가 쉽게 상하지 않도록 하는 동시에, 기존 두부보다 깊고 안정된 맛을 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강릉은 조선시대부터 해양 식재료를 이용한 염장 문화와 발효식 전통이 발달한 지역으로, 두부 또한 이 식문화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편입되었다. 조선 중기 이후, 강릉의 선비 가문이나 서원에서는 초당두부를 손님 접대 음식, 제사 음식, 사계절 건강식으로 자주 사용했으며, 이는 두부가 단지 끼니를 때우는 음식이 아닌, 의례와 철학이 담긴 음식으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준다.

초당두부의 지역 전통과 현대의 문화 산업화

시간이 흐르며 초당두부는 강릉을 대표하는 향토 음식이 되었고, 20세기 중반부터는 관광객과 외지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특히 1970년대 이후 강릉시 초당동을 중심으로 두부 가게들이 생겨나며, 이 지역 전체가 ‘두부마을’로 성장하게 된다.

현재 초당두부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우수 향토음식’으로 지정되었고, ‘강릉 초당두부’는 지리적 표시제 등록 대상 품목으로도 꾸준히 논의되어 왔다.
지역 내에서는 초당두부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음식 콘텐츠가 개발되고 있으며, 두부전골, 두부청국장, 두부전, 두부순두부 등 다양한 전통식이 지역 경제를 견인하고 있다.

또한 강릉 초당두부축제, 두부 체험관, 전통식 조리 체험 프로그램 등은 교육과 관광을 동시에 엮는 문화 콘텐츠로 발전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강릉의 자연, 역사, 유교문화, 관광이 연결된 입체적인 지역 콘텐츠 자산으로 초당두부가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현대에 들어서 초당두부는 건강식으로서의 가치도 주목받고 있다.
무방부제, 무색소, 저염, 고단백의 자연식으로 소개되며, 웰빙 트렌드에 맞춰 전국 유통망도 확장 중이다.
그러나 강릉 사람들은 여전히 "진짜 초당두부는 바닷바람과 그 지역의 손맛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말 속에는 기술보다 철학, 맛보다 마음이 먼저라는 전통적 가치관이 담겨 있다.

바닷물 한 사발로 이어진 철학과 손맛, 초당두부의 깊은 뿌리

초당두부는 단지 두부가 아니다.
그 안에는 조선의 선비정신, 바다와 자연을 활용한 생활의 지혜, 그리고 검소하고 정갈한 유교식 식문화가 함께 담겨 있다.
해풍과 바닷물이 만들어낸 이 단단한 음식은 시간을 오래 담아두고, 사람의 손으로 조심스럽게 빚어낸 전통의 맛이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초당두부 한 점에는 수백 년의 시간이 스며 있다.
그것은 허엽의 검소한 삶을 기억하고, 바닷바람을 막아가며 간수를 끓이던 누군가의 노력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그 기억은 지금도 강릉의 바닷가 골목마다 남아 있어, 현대인의 식탁에서도 옛 선비의 식생활과 정신을 되살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강릉 초당두부는 결국, 바닷물 한 사발과 손맛 한 줌으로 만든,
한국 고유의 슬로우푸드이자 문화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