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특산물의 역사

충북 단양 마늘, 험준한 산속에서 자라난 알싸한 역사

insight-2007 2025. 7. 1. 20:30

험한 산이 길러낸 알싸한 뿌리, 단양 마늘에 담긴 땅과 사람의 이야기

충청북도 단양은 웅장한 소백산맥을 끼고 흐르는 남한강을 중심으로, 수려하면서도 험한 자연을 품은 고장이다. 이 지역은 농사를 짓기엔 만만치 않은 지형이지만, 그 거친 땅을 일구고 살아온 사람들의 손끝에서 자라난 한 작물이 있다. 바로 단양 마늘이다.

험준한 산속에서 자라난 충북 단양 마늘


이 마늘은 작지만 단단하고, 육질이 탱탱하며, 매운맛이 강하게 살아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알싸함이 혀끝을 자극하고 목을 타고 흐를 때, 우리는 단양이라는 땅이 품은 힘과 정직함을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단양 마늘은 단순한 지역 특산물이 아니다. 그 속에는 조선 후기 농서에 등장하는 산간 농업의 기록, 일제강점기 공출 작물로서의 역할, 민간 약초로서의 쓰임, 제례와 유교 문화 속에서의 의미가 겹겹이 담겨 있다.
『산림경제』와 『해동농서』, 『농가월령가』 같은 농정 문헌에서 마늘은 산촌 생계 작물로 비중 있게 언급되었고, 단양처럼 경작지가 부족한 산간 지역에서는 마늘이 사람들의 건강과 생계를 지키는 일등 공신이었다. 더욱이 단양은 단단한 사질양토와 큰 일교차, 맑고 건조한 봄바람 덕분에 마늘 재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춘 곳이다. 이런 자연 조건과 함께, 세대에 걸쳐 이어진 재배 기술과 생활 속 약용 지혜가 더해져 단양 마늘은 단순히 매운 채소가 아니라, 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품은 ‘알싸한 기록’이 되었다.

이 글에서는 단양 마늘이 어떻게 조선 시대부터 현대까지 살아남으며, 한 지역의 삶과 함께한 약용 식문화로 성장했는지, 그리고 그 속에 어떤 역사적 가치와 정체성이 깃들어 있는지를 깊이 있게 풀어본다.

조선 농서 속 마늘의 위치, 단양에서의 재배 기록

마늘은 조선시대 내내 중요한 식재료이자 약초로 여겨졌다.
『산림경제』에는 “마늘은 산촌의 생계 작물로 해마다 늦가을 심어 이른 여름에 캐어 팔면 짭짤한 돈이 된다”고 기록돼 있다.
이는 단순한 채소가 아니라 계절에 따라 백성의 소득을 보전해주는 작물이었다는 뜻이다. 이 구절은 특히 단양처럼 논이 부족하고 밭농 위주의 지역에서 마늘이 생계 작물로 선택된 배경을 설명해준다.

『해동농서』에서는 마늘을 “오신(五辛) 중 으뜸으로, 음식을 도우며 병을 막는 백약의 으뜸”이라 했으며, 『농가월령가』에서도 “팔월에는 마늘 심을 씨를 고르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이런 기록은 마늘이 농경 주기 속에서 반드시 재배해야 할 작물로 인식되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단양군 관내 일부 종가에서는 『가가례집』(집안에서 전해져 내려온 제례 지침서) 속에 제수용 마늘 보관법과 볶음 조리법, 마늘장아찌 관련 내역이 남아 있어, 단양 마늘이 단순한 음식이 아닌 의례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는 흔적도 볼 수 있다.

단양이 마늘 재배의 중심지로 성장하게 된 데에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문헌적 근거가 명확히 존재한다.

일제강점기 공출 작물로서의 단양 마늘과 생산의 지속성

1910년 이후 일제는 조선 각지에서 농산물 생산량과 품질을 조사하고, 수탈 가능한 작물 중심으로 농정 정책을 강제 시행했다.
『조선총독부 통계연보(1923)』에는 단양 지역에서 생산되는 마늘의 품질이 우수하여 도 단위 공출 작물로 지정되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 시기 단양 마늘은 대전, 청주, 서울 등의 일본인 상점으로 납품되었으며, 일부는 관공서 급식 재료로도 사용되었다.

마늘은 저장성이 뛰어나고, 장거리 유통이 가능해 산간 지역 농민들이 현금화하기에 좋은 작물이었다. 단양 사람들은 험한 지형 속에서도 밭을 일구고 마늘을 심었고, 이를 통해 벼농사 중심의 식량정책 속에서도 자립적인 농산물 수출 구조를 형성했다.

또한, 단양 마늘은 이 시기부터 ‘육쪽마늘’이라는 이름으로 품종적 차별화가 이루어졌다. 일제는 마늘을 ‘백서종’ ‘적피종’ 등으로 구분했는데, 단양 마늘은 껍질이 하얗고 얇으며 속이 단단한 고품질 계열로 분류되며, 농사훈령의 품종 추천 목록에도 포함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단양 마늘이 단지 향토 작물이 아닌, 근대적 품종 분류 체계에서도 확실히 구분된 특산물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단양 마늘의 문화사(의례, 약용, 민속)를 아우른 ‘생활약초’

단양 마늘은 조선시대 이후 유교 제례 문화와 약선 음식 문화 속에서 독자적 위치를 형성했다. 마늘은 대표적인 오신(五辛) 식재료 중 하나로서 조상에게 정갈하고 강한 기운을 전해준다는 상징성을 가졌고, 특히 단양 마늘은 향이 강해 소량으로도 큰 효과를 줄 수 있어 제수용으로 선호되었다.

『의방유취』와 『동의보감』에는 마늘의 약성을 “속을 덥히고, 기운을 뚫으며, 독을 해독한다”고 정의하며, 마늘은 질병 예방을 위한 민간약으로서의 신뢰도 높은 약초로 자리 잡았다. 단양에서는 마늘을 가루 내어 꿀과 함께 섞은 마늘단지(환 형태의 민간약)를 만들어 겨울철 기침과 설사, 손발 저림에 복용하기도 했다.

또한 산속에서 채취한 더덕, 두릅과 함께 마늘은 단양 농가의 3대 약초 식품으로 손꼽혔으며, 마늘장아찌, 마늘쫑 볶음, 마늘된장무침 등은 지금까지도 단양 전통 반찬으로 이어지고 있다. 단양에서는 지금도 노인들이 마늘을 “몸을 살리는 뿌리”라고 말하고, 손주들에게 여름철 복날에는 마늘죽을 끓여 먹이는 풍속도 이어진다.

이처럼 단양 마늘은 단지 강한 맛이 아니라, 삶의 리듬과 공동체의 지혜가 스며든 생활 약초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