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양구 시래기, 휴전선 마을에서 피어난 전쟁 후 음식 문화
시래기 한 줌에 담긴 분단의 역사와 삶의 지혜
강원도 양구는 대한민국 최북단에 위치한 접경 지역이다. 휴전선과 맞닿은 이 땅에는 한국전쟁 이후 생겨난 ‘실향민 마을’과 전쟁의 상처를 품은 삶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 속에서 피어난 한 끼의 음식이 있었으니, 바로 ‘시래기’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무청 말린 나물 시래기는 단순한 반찬 그 이상이다. 전쟁과 가난, 겨울과 배고픔, 그리고 공동체의 생존을 상징하는 음식 문화였다.
양구는 전쟁 직후 폐허가 된 산간 마을에 함경도와 황해도에서 내려온 피란민들이 정착하며 형성된 대표적인 실향민 지역 중 하나였다. 벼농사는 어려운 환경에서 가을이면 수확 후 남은 무청을 엮어 말려 겨울 내내 삶아 먹는 방식은, 기근과 추위를 견뎌낸 지혜였고, 그 시래기는 이들에게 정착의 상징이자 민족 음식의 뿌리가 되었다. 이 글에서는 양구 시래기가 단순한 나물이 아니라, 어떻게 전쟁과 실향의 역사, 생존과 공동체의 문화 속에서 태어난 특산물이 되었는지를 역사 중심으로 조명하고, 오늘날 지역 경제와 정체성을 이끄는 특산물 산업으로서의 가치를 함께 살펴본다.
실향민과 산간마을, 시래기가 주식이 된 배경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강원도 양구는 남북이 맞닿은 긴장감 속에서도 전쟁 피란민과 실향민들의 정착지가 되었다. 특히 양구 해안면과 동면, 방산면 일대는 군사분계선과 가까워 군 작전구역으로 규제받으며 벼농사나 상업 농업이 어려운 땅이었다. 이런 지역에 뿌리를 내린 실향민들은 겨울을 나기 위한 식량 확보가 가장 큰 과제였다. 그중에서도 선택된 것이 바로 무청(시래기)이다.
무를 수확한 뒤 버려지기 쉬운 무청을 끓는 물에 데쳐 말린 후, 겨울철에 다시 불려 찌개, 나물, 밥, 국으로 활용하는 방식은 함경도, 황해도 등 실향민의 고향에서 가져온 식생활이었다.
양구는 기후 특성상 겨울이 길고 혹독해 신선한 채소를 구하기 어려웠고, 덕분에 시래기 저장과 가공, 활용법이 지역에 깊숙이 정착하게 되었다. 『한국전쟁 구술자료집』에 따르면, “겨울엔 시래기를 안 먹으면 밥상이 없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할 만큼, 시래기는 생존의 상징이자 민속 그 자체였다. 특히 1950~70년대 양구에서는 시래기를 함경도식 된장국, 청국장찌개, 밥에 얹은 찜 형태로 다양하게 조리했으며, 한 솥 끓여 온 가족이 나눠 먹던 정이 시래기에 담겨 있었다.
전통과 조리법, 시래기를 둘러싼 민속의 풍경
시래기는 ‘무청’ 그 자체가 아니라, 건조와 삶기, 보관, 조리의 과정을 거쳐야 완성되는 음식이다. 양구에서는 가을이 되면 집마다 시래기 건조 작업이 한창이었고, 무청을 꺾어 삶은 뒤, 햇볕에 널어 바람으로 말리는 풍경은 이 지역 겨울 준비의 상징이었다. 시래기 말리는 방식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양구에서는 함경도 전래 방식에 따라 삶은 무청을 줄기째 엮어 지붕 밑 처마에 매달거나 장작불 위에 걸어 건조하는 방법이 널리 사용되었다. 이렇게 말린 시래기는 겨울 내내 찌개, 국, 찜으로 재탄생되며 영양과 온기를 책임졌고, 특히 된장과 궁합이 좋아 ‘된장시래기국’은 양구를 대표하는 겨울 국물요리가 되었다.
명절이나 제사 때도 시래기는 중요한 음식이었다. 특히 함경도·강원도 민속에서는 시래기를 조상에게 올리는 것이 ‘산속 나물로 조상의 혼을 달랜다’는 의미로 통했고, 시래기를 무쇠솥에 넣고 소고기나 말린 북어와 함께 끓여 ‘명절국’으로 차리는 풍습도 일부 가정에 남아 있다. 이처럼 시래기는 생존을 넘어서서 세시풍속과 제례, 가족문화, 이웃과의 나눔 등 다양한 민속적 의미를 가진 식재료로 정착했다.
지역 특산물로 자리잡기까지 – 양구 시래기의 산업화
1980년대 이후 양구에서는 시래기를 단순한 겨울 반찬이 아닌 지역 특산물로 육성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특히 농협과 군 단위의 영농조합법인을 중심으로 시래기 전문 건조시설, 위생 포장, 전국 유통체계가 구축되면서 ‘양구 시래기’라는 브랜드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현재 양구는 연간 수천 톤의 시래기를 가공·유통하며, 건시래기, 절임시래기, 삶은시래기, 시래기즙, 시래기된장국 레토르트 식품 등으로 다양화된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양구 시래기 축제’도 매년 개최되어, 시래기 음식 시식, 무청 엮기 체험, 실향민 음식 복원행사 등을 통해 지역 역사와 음식문화를 함께 홍보하고 있다.
무엇보다 의미 있는 점은, 양구 시래기의 뿌리에 실향과 분단의 기억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단순한 식품이 아닌, 기억을 먹고, 전통을 담고, 공동체의 애환을 이어주는 음식으로서의 시래기 산업은 지역민에게는 자부심, 외부인에게는 흥미로운 역사 콘텐츠가 되고 있다.
오늘날 양구 시래기의 의미 – 기억과 미래를 잇는 음식
오늘날 양구 시래기는 단순한 향토 식재료를 넘어, 한반도 분단의 기억과 민속 음식의 미래를 잇는 유산이 되었다. 시래기를 담는 손에는 여전히 그 시절 실향민의 마음, 전쟁 이후 재건의 의지,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슬기가 배어 있다.
양구군은 시래기를 활용해 고령 농가의 소득을 보장하고, 청년 농업인 유입을 유도하는 ‘시래기 귀촌 농업 모델’도 확대하고 있으며, 학교 급식, 병원 환자식, 해외 수출 식품으로서의 가능성도 넓히고 있다. 또한 시래기와 관련된 실향민 구술 자료, 음식 조리법, 전통 엮기 방식 등을 기록하고 전시하는 지역 문화관도 기획 중이며, 이는 시래기를 통해 분단의 아픔과 생존의 지혜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중요한 교육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시래기 한 줄기는 곧 전쟁의 흔적 속에서 피어난 평화의 음식, 그리고 고향 없는 이들의 고향을 담은 상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