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익산 국화, 백제의 궁궐 정원에서 자란 향기의 귀족
향기와 고결의 상징, 백제의 문화 정원에서 되살아난 익산 국화의 기원
전북 익산은 고대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였으며, 오늘날에도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 등 찬란한 백제 문화의 흔적을 간직한 도시다. 그런데 이 유서 깊은 도시에는 단지 석탑과 유적지만이 아닌, 향기로운 전통이 살아 숨 쉬는 한 송이의 꽃이 있다. 바로 ‘국화’다. 오늘날 ‘익산 국화’로 널리 알려진 이 꽃은 단순한 원예 작물이나 가을축제의 상징을 넘어서, 백제 궁중의 정원과 사찰에서 심고 가꾸었던 전통 식물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국화는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오랫동안 고결함, 장수, 정신적 수양의 상징으로 사랑받아 왔다. 특히 한국에서는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국화차, 국화주, 국화향 목욕 등의 다양한 생활 속 활용법이 발전했으며, 문인과 선비들 사이에서는 시(詩)와 그림의 소재로도 자주 등장했다. 하지만 국화의 국내 전래 시점은 백제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학계 견해도 있으며, 이 전통은 바로 익산 지역의 정원 문화 속에서 꽃피웠다.
이 글에서는 익산 국화의 기원과 역사성, 백제 궁궐 문화 속 국화의 존재, 현대 익산에서의 국화 산업과 문화자원화, 그리고 세계화를 향한 가치 확장을 깊이 있게 다룬다. 익산 국화는 단순한 꽃이 아닌, 천년을 이어온 향기와 품격의 유산이다.
백제 왕궁의 정원, 국화가 핀 문화 공간의 시작
익산의 국화가 오늘날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배경에는, 이 꽃이 단지 원예적 가치에 그치지 않고 백제의 궁궐과 사찰 정원에서 자란 전통의 향기라는 깊은 문화적 맥락이 있다. 익산은 7세기 백제 무왕 대에 사비에서 천도하여 세운 도읍지로, 궁궐과 사찰, 귀족들의 정원이 조성되며 화훼 문화의 중심지로 기능했다.
실제로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 유적 등에서는 백제 후기 정원 유구 및 수로 시설이 발견되었고, 이 정원에는 국화뿐 아니라 모란, 연꽃 등의 관상식물도 함께 식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국화는 중국 한나라를 통해 백제에 유입된 것으로 보이며, 불교의 수행 공간과 귀족들의 사색 공간에 자주 활용된 꽃이었다.
국화는 당시 백제 상류층 사이에서 지조와 고결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특히 가을이 되어 다른 꽃들이 시들 무렵에 오히려 향기를 더하는 국화의 특성은, 불교의 무상함과 선비정신을 상징하는 식물로 각광받았다. 백제 무왕의 왕비였던 선화공주가 직접 국화차를 즐겨 마셨다는 이야기가 구전되며, 일부 문헌에서도 국화를 곁에 두고 수행한 승려와 문인들의 기록이 발견된다.
익산 지역의 지형은 국화 재배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했다. 왕궁리 일대는 배수가 뛰어나고, 가을철 일교차가 큰 분지 구조를 갖고 있어 꽃의 색과 향을 더욱 깊고 선명하게 만드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이로 인해 백제 후기에는 익산에서 자란 국화가 귀족층 사이에서 귀한 정원 식물로 교류되기도 했으며, 이러한 흐름이 익산 국화의 역사적 기원을 이룬다.
결국 국화는 단지 관상용 식물 이상의 존재였다. 그것은 백제 궁궐 정원의 향기로운 철학, 불교적 수행 공간의 상징, 그리고 문화적 고급스러움이 깃든 식물이었고, 익산이라는 땅 위에서 천 년을 넘어 오늘날까지 그 전통을 잇고 있다.
익산 국화, 선비의 정신과 예술혼을 담은 향기의 유산
익산 국화는 백제를 지나 고려와 조선 시대에도 지역에서 중요한 문화적 상징으로 계승되었다. 조선 중기부터는 국화가 전국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했지만, 익산 지역에서 자란 국화는 유독 향이 깊고 색감이 강한 품종으로 선호되었고, ‘향기 깊은 국화는 익산 땅에서 난다’는 말이 문인들 사이에서 회자되었다.
이 시기 익산 국화는 단순한 정원 식물이 아니라, 선비들의 사색 공간과 시문 창작의 배경으로 기능했다. 익산 지역의 서원과 정자, 사대부 가문에서는 국화를 주요 식물로 가꾸며, 가을마다 국화 연회나 국화 차회를 여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특히 함열서원, 옥정서원, 마한유허지 인근에서는 매년 음력 9월 9일(중양절)에 국화를 주제로 한 풍류회가 열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선비들에게 국화는 늦가을 차가운 바람에도 꿋꿋하게 피는 꽃으로서, 절개와 고결함의 정신적 상징이었다. 『동국여지승람』이나 『여지도서』 등에는 익산 국화와 관련된 언급이 드물게 등장하며, 특히 익산 인근의 함라면 일대가 국화 재배에 최적지로 평가되었다. 이는 당시 함라 장터에서 익산 국화차가 팔렸다는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또한 조선시대 문인들은 국화를 단순히 감상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국화 시(詩), 국화도(圖), 국화 자수(刺繡) 등의 예술 형태로 발전시켰다. 익산 지역 출신 혹은 익산과 인연을 맺은 문인들 중에는 국화를 소재로 한 시를 남긴 이들이 다수 있으며, 일부 국화 자수 병풍은 지방 문화재로 지정되어 현재까지 전해진다.
익산 국화는 그처럼 조선시대까지도 향기, 정신성, 예술성의 삼박자를 갖춘 지역 특산 식물로 자리잡았으며, 그 명맥은 현대에 이르러 더욱 다채로운 형태로 복원되고 있다. 특히 국화를 단순한 꽃이 아닌, 한 송이의 향기 속에 정신과 미학을 담아낸 식물로 보는 전통은 익산에서 더욱 진하게 이어진다.
익산 국화, 산업과 문화가 만난 향기 마케팅의 성공 사례
익산 국화는 전통 속 고결한 상징에서 벗어나, 오늘날에는 지역 경제를 이끄는 산업 콘텐츠이자 관광 자원으로 재해석되며 그 가치를 넓혀가고 있다. 특히 익산시는 2000년대 초반부터 국화 산업을 전략 작목화하고, ‘플로럴 시티 익산(Floral City Iksan)’이라는 브랜드 아래 도시 이미지 자체를 꽃과 향기로 재정의하는 데 주력해 왔다.
그 중심에는 바로 익산 국화가 있었다. 국화는 재배 기간이 짧고, 계절성 소비가 강하며, 특히 전시·관광·원예·가공 산업으로의 연계성이 뛰어난 작물이다. 이에 따라 익산시는 함열·왕궁·금마 지역을 중심으로 국화 재배단지를 조성하고, 고급 절화 국화 품종 개발, 약용 국화(감국, 황국) 시험 재배, 국화 테마 정원 및 관광농원 지원, 농가 대상 국화 재배 교육 확대 등을 체계적으로 추진해 왔다.
특히 ‘익산 천만송이 국화축제’는 오늘날 전국 최대 규모의 가을 꽃 축제로 자리 잡았다. 매년 10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중앙체육공원과 미륵사지 일원에서 열리는 이 축제는, 약 2주간 50만 명 이상이 찾는 익산 대표 관광 이벤트다. 이곳에서는 국화 조형물, 테마별 국화 화단, 농산물 직거래 장터, 국화 공예 체험 등 다양한 콘텐츠가 운영되며, 국화 한 송이를 중심으로 도시 전체가 ‘향기 마케팅’의 현장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축제는 단순한 볼거리 제공을 넘어, 지역 농가에 실질적인 소득 창출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국화 재배 농가는 절화용, 분화용, 테마 조형용 등 다양한 용도의 국화를 연중 공급하며, 국화차, 국화정과, 국화 에센셜오일 등 가공식품과 뷰티 상품군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최근에는 익산 국화를 활용한 방향제, 향수, 캔들 등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도 등장하며, 젊은 소비층을 겨냥한 국화 상품 다변화가 본격화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익산시는 국화의 전통성과 지역 스토리를 결합한 문화 교육 콘텐츠도 운영 중이다. 관내 초·중학교에서는 ‘국화와 백제 문화’라는 주제로 지역 탐방 수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국화꽃의 구조, 향기, 조형 기술 등을 배울 수 있는 체험형 정원 교육 프로그램도 확대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단순히 식물을 심는 것이 아니라, 향기 속에 깃든 지역 정체성과 역사성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특히 2020년 이후, 익산시는 ‘향기 도시 익산’이라는 새로운 도시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고, 국화를 중심으로 향기 산업, 치유농업, 관광 콘텐츠를 하나로 결합한 새로운 6차 산업 모델을 구축 중이다. 국화는 이 전략의 중심에 있는 작물로, 단지 시각적 요소를 넘어 심리적 위로와 힐링의 매개체로서도 활용된다.
결국 익산 국화는 백제의 정원에서 피어난 고결한 향기를 현대적으로 복원하고, 이를 산업과 문화, 교육, 관광이 융합된 미래형 도시 콘텐츠로 성공적으로 변환한 사례라 할 수 있다. 그 중심에는 익산만의 스토리와 품질, 그리고 향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지속 가능한 산업의 흐름이 있다.
세계로 향하는 익산 국화, 향기로 전하는 백제의 정신
이제 익산 국화는 지역을 넘어 세계로 향하는 한국 향기 콘텐츠의 대표 주자로 발돋움하고 있다. 단지 꽃의 외형이 아름답다는 이유만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천년의 역사성과 향기라는 감성적 매개체, 그리고 백제 문화라는 독창적 스토리텔링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익산시는 국화 관련 산업의 수출 확대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국화 절화 및 분화 화분의 일본·대만 수출, 국화 에센셜 오일 및 방향 제품의 동남아 수출, 국화차 및 감국 엑기스의 건강식품 수출 등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일부 국화 상품은 K-원예 브랜드로 글로벌 홈인테리어 시장에도 진입했다. 특히 유럽과 미국에서는 ‘향기와 정신성’이 결합된 감성 원예 상품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어, 익산 국화의 스토리텔링 기반 마케팅은 더욱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익산 국화가 ‘향기의 정신문화유산’으로서 세계 시장에서 차별화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꽃을 파는 것이 아니라, “백제의 궁궐 정원에서 이어온 향기의 철학”, “절개와 사색, 치유와 정화의 향기”라는 문화적 상징성과 메시지를 함께 전달하는 것이다.
현재 익산시는 유네스코 창의도시(공예 및 민속예술 분야)와 함께, ‘향기문화유산 도시’라는 개념을 개발 중이며, 익산 국화를 중심으로 한 향기 아카이빙 센터, 향기 명상 정원, 국화 힐링 워크숍, 백제 향기축제와 같은 다국어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수출을 넘어 향기 기반 감성 문화의 수출, 즉 백제 정신의 세계화를 위한 문화 외교의 형태로 진화하는 단계다.
또한 익산 국화는 기후 변화 시대의 대응형 작물로도 주목받고 있다. 기온 변화에 비교적 강하고, 시설 재배가 가능하며, 다양한 품종 개량을 통해 치유용, 기능성, 관상용 등 다기능 제품으로 전환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현재 일부 국화 품종은 항산화, 항염증 기능을 인정받아 식품원료로도 개발 중이며, 이는 향후 자연 기반의 기능성 원료 시장에서 큰 경쟁력을 갖게 될 전망이다.
결국 익산 국화는 단순한 향기나 미적 가치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천년을 이어온 정신성과 지역성이 결합된 문화적 자산이며, 전통을 현대화하고, 향기를 산업화하며, 지역을 세계와 연결하는 브릿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도시 마케팅의 성공이 아니라, 한 송이 꽃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한 도시의 정체성이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시대의 흐름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