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특산물의 역사

경북 울진 대게, 조선 해양일기에 기록된 ‘대가리 큰 게’의 탄생사

insight-2007 2025. 7. 9. 10:15

‘대가리 큰 게’라 불린 그날부터, 울진 바다의 전설은 시작됐다

경북 울진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게 산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겨울이면 울진 죽변항과 후포항 일대에는 선홍빛 대게를 손에 들고 줄지어 선 사람들로 북적인다. 하지만 이 대게가 언제부터 ‘울진의 대게’로 불리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특별한 수산물로 여겨지게 되었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조선 해양일기에 기록된 경북 울진 대게

 

대게라는 명칭은 조선시대 문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조선 후기에 쓰인 『해유록(海遊錄)』에는 “경상도 울진 근해에 다리가 길고 대가리가 큰 게(大介)가 있어 배 위에서 잡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는 대게에 대한 가장 이른 시기의 언급 중 하나로, ‘대게’라는 말의 어원이 ‘몸집이 크고 다리가 긴 게’, 또는 ‘대가리가 크다’는 민간 표현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준다.

이 글에서는 울진 대게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인식되었고, 조선의 어업 기록과 함께 어떤 형태로 정착되었는지, 그리고 현대까지 이어지는 지역 상징으로서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를 깊이 있게 살펴본다.

조선시대 해양일기 속 ‘대게’의 첫 등장과 이름의 기원

조선시대의 해양 기록들은 매우 드물지만, 남아 있는 일부 일기와 지방지(地方誌) 속에는 귀중한 어류와 수산물에 대한 언급이 등장한다. 그중 하나가 조선 후기 울진 출신 유생인 이익해(李益海)가 남긴 『해유록(海遊錄)』이다. 이 기록에는 “동해 근해에 사는 게 중 몸집이 유독 크고, 다리와 몸통의 껍질이 단단하여 끓인 뒤에도 잘 으깨지지 않는다”고 묘사돼 있다. 여기서 묘사된 게는 현대의 대게와 매우 유사한 특징을 지닌다. 기록 속 표현인 ‘대가리 큰 게’ 혹은 ‘대介’는 오늘날의 ‘大蟹(대게)’와 발음이 같고, 그 모양새나 생태 역시 동해 대게(Snow crab, Chionoecetes opilio)와 일치한다. 따라서 이 문헌은 단지 어부의 체험기가 아니라, 울진 대게의 기원을 역사적으로 추적할 수 있는 주요 사료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세종실록지리지』나 『동국여지승람』 등에도 울진, 영덕, 삼척 등의 동해 연안 지역에서 “겨울철에 껍질이 단단한 대형 게를 잡는다”는 기술이 반복되며, 이는 지역별 어획물이 조정에 보고된 정황을 뒷받침한다. 즉, 울진 대게는 단순히 근현대 어업 발달의 산물이 아니라 조선시대부터 이미 존재했던 특이 어종으로 인식되었고, 그 명칭 또한 당시 민간 언어 속에서 형성된 자연어였던 것이다.

울진 대게, 조선 해양 어장 속에 뿌리내린 겨울의 산물

울진 대게가 조선시대에 실질적인 어획 대상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바로 울진 앞바다의 해저 지형과 수온, 그리고 계절성의 특수성 덕분이다. 울진 앞바다는 수심이 깊고, 해저 지형이 복잡하며, 찬 해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지점이기 때문에 대게가 서식하기 좋은 냉수대 환경을 안정적으로 유지한다.

『경상도속찬지리지』에는 울진 일대의 겨울 해산물 중 ‘껍질이 단단하고 손가락처럼 생긴 다리를 지닌 큰 게’를 “찜하여 올리면 색이 붉고 살이 단단하다”고 표현했으며, 이는 당시 대게가 이미 요리의 재료이자 겨울철 주요 수산물로 활용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울진 대게는 대개 11월 말~4월 초 사이에 어획되며, 이 시기는 조선시대 어업 관리 체계에서도 ‘한시적 조업 허용’이 이루어졌던 기간이다.
『대동해경지(大東海境誌)』에는 “울진, 영덕, 삼척은 겨울이면 큰 게를 잡아 장에 내다 팔았고, 일부는 건조해 멀리까지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내용은 울진 대게가 지역을 넘어 상업적 유통의 길을 걷기 시작한 흔적으로 해석된다. 또한 이 시기 울진 포구에는 어민뿐 아니라 육로 상인이 몰려들었고, 대게는 '추위가 만든 겨울의 식보(食寶)'로 여겨졌다. 이처럼 울진 대게는 조선시대 기후, 지리, 지역 시장이 맞물리며 겨울의 대표 수산물로 자리매김한 역사를 지닌다.

울진 대게, 민속과 생활 속에 스며든 문화적 상징

울진에서는 예부터 대게를 명절과 제례용 음식, 잔칫상, 마을 제사상에 올리는 귀한 해산물로 여겨왔다. 특히 선홍빛 껍질과 다리의 단단함은 붉은 기운이 재액을 막고, 건강과 복을 기원한다는 민속적 상징과 연결되었다.

마을 어귀에는 대게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놓이고, 결혼식 혼례상이나 환갑상에 대게를 통째로 올리는 풍속이 이어졌으며, 이는 ‘힘 있는 집안’ 혹은 ‘손님을 정성으로 모신다’는 표현으로 받아들여졌다. 또한 해녀나 어부들 사이에서는 대게 등껍질을 말려 부적처럼 사용하거나, 정월대보름에 태워 액운을 막는 전통도 있었다.

현대에 들어서도 대게는 단순한 식품을 넘어 관광 자원, 지역 경제의 축, 그리고 지역 정체성의 상징으로 기능하고 있다. 매년 2월에서 3월 사이 울진에서는 ‘울진대게와 붉은대게 축제’가 열리며, 이 축제에서는 대게잡이 체험, 대게 해체 쇼, 대게 시식, 어업 유물 전시 등 문화와 산업이 결합된 복합 콘텐츠가 운영된다. 이처럼 대게는 울진 사람들에게 있어 자연이 준 선물이며, 세대를 이어온 노동의 결과이며, 지역의 얼굴이기도 하다.

오늘날 울진 대게 산업과 역사적 브랜드의 계승

울진군은 현재 전국 대게 생산량의 약 30% 이상을 차지하는 대표 산지로, ‘울진 대게’는 2011년부터 지리적 표시제 등록이 완료된 국가 인증 수산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지역 어촌계는 대게 자원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매년 자율적인 금어기 설정, 치게 방류 사업, 어획량 조절 규칙 등을 실시하고 있으며,
이는 조선시대의 ‘한시 조업’ 전통이 현대 자원관리 방식으로 계승된 대표적 사례다. 또한 울진군은 지역 수산고등학교, 수산연구소와 연계해 대게 해체·요리 전문가 양성, 대게 관광코스 개발, 전통 어구 복원 전시문화-산업-교육이 결합된 지속 가능한 어업 생태계를 구축 중이다.

무엇보다 울진 대게는 이제 단순한 지역 수산물이 아니라, 조선의 해양일기에 등장한 ‘대가리 큰 게’에서 시작해, 21세기의 브랜드 자산으로 성장한 살아 있는 역사다. 그 껍질 아래 숨은 시간은 길고 깊으며, 지금도 바다 위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