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들판에서 시작된 포천 한우의 천년 혈통
경기도 포천은 오늘날 ‘한우 명품 도시’로 불린다. 하지만 이 명칭은 단순한 브랜드 마케팅이 아니라, 조선 시대부터 이어진 목축의 역사와 왕실 문화의 유산이 이어져 내려온 결과다.
현재 포천에서 길러지는 한우는 단순한 축산물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조선왕조의 궁장(宮場, 궁중 목장)과 봉토(封土) 제도, 그리고 국가의 식량·제사 체계와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조선 초 태조 이성계는 한양 천도를 마친 후, 수도 인근의 들판에 사냥터와 목장, 그리고 궁궐에 필요한 축산 자원을 조달할 궁장 제도를 적극 도입했다.
포천은 이러한 왕실 농목장의 핵심 지역 중 하나였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대동지지(大東地志) 등의 고지도서에는 포천이 궁장의 위치이자 소와 말을 방목하던 왕실 재산의 일부였음이 여러 차례 언급된다. 포천에서 길러진 황소는 단순히 식용으로서의 소고기를 넘어, 제례용 진상품, 군사용 수송 짐꾼, 사찰 공양재로까지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갖춘 포천 한우는 오늘날에도 그 전통성과 품질을 함께 이어받은 살아 있는 문화자산으로 평가된다.
왕실 사냥터에서 자란 포천 한우 – 궁장과 공물의 기원
조선 초기 국왕들은 사냥을 군사훈련이자 통치 의례로 인식했다. 『조선왕조실록』의 태종·세종·성종대 기록에는 포천, 연천, 가평 일대에서 대규모 사냥(수렵)이 거행되었다는 내용이 반복 등장한다. 이 사냥터에는 사냥감만 존재한 것이 아니라, 왕실에 필요한 말을 기르고, 짐 운반용 소와 제사용 가축을 방목하던 궁장이 함께 운영되었다. 이때 방목된 소 가운데 근육량이 우수하고, 기후와 지형에 강한 개체들이 포천 일대에서 선별·육성되었으며, 이들 중 일부는 정기적으로 도성(한양)으로 운반되어 진상품으로 올려졌다.
『신증동국여지승람』(16세기 중엽)에 따르면 “포천군 북면에는 목장이 있어 말을 기르고, 그 곁에 소와 노새도 함께 방목한다. 봄 가을에 관리가 나와 점검한다.”고 적혀 있다. 이 기록은 포천 일대에 왕실 직할의 가축 관리체계가 운영되었으며, 지속적인 품종 개량과 출하가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당시 사육된 소들은 주로 황소(황갈색), 흑소(검은색), 적갈색 소로 분류되었으며, 포천 한우는 그 중에서도 흑모(黑毛)가 섞인 갈색 소가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후에 고려 말~조선 초 왕실 공납으로 올라갔던 강원도와 경기도 산간 황소 계통과도 유사하며, 포천 한우의 품종적 기원이 그때부터 이어졌음을 암시한다.
봉토 제도 속에서 살아남은 포천 한우의 전통 목축문화
조선 전기 이후, 왕실의 사냥 활동이 줄어들면서 궁장의 기능은 점차 봉토와 민간 경작지로 이전되었다. 봉토란 왕족과 공신, 혹은 승려에게 내려준 토지로, 해당 지역에서 얻어진 곡식, 가축, 인력 등을 조달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였다.
포천은 한양과 가까워 주요 봉토 지정지였고, 특히 조선 후기에는 영의정 이상춘, 병조판서 김유 등 주요 인물들의 봉토가 포천에 분포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봉토 지역에서는 사찰 경제와도 연결된 목축문화가 형성되었으며, 사찰에서 공양이나 의약용으로 사용하는 한우의 간, 쓸개, 뼈, 간유(간기름) 등이 정기적으로 조달되었다. 특히 포천에 위치한 광덕사, 운천사 등의 사찰에서는 대추, 약초, 그리고 우수한 가축 사육이 병행되었으며, 포천 한우는 사찰 공양과 연계된 생활 농업 문화의 일환으로 자리 잡게 된다.
19세기 후반 『임원경제지』에서는 “포천 땅은 물 좋고 들판이 평탄해 대추와 황우(黃牛)가 우수하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는 이미 그 시기에 포천 한우가 별도의 품질 인식과 지역적 위상을 가진 작물로 자리잡았다는 증거다. 또한 『경기읍지』에는 “포천 북면에는 매년 정기적으로 소를 거두어 양곡과 함께 경성으로 보내는 일이 이어진다”고 기록되어, 공물 체계 안에서의 지역 축산 운영도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와 현대 산업 속 포천 한우의 재정립
일제강점기에는 전국의 전통 목장 대부분이 해체되고, 국가 주도의 종축장 체제로 전환되었다. 포천 역시 일본 총독부의 동물시험장 분지 후보지로 언급되었고, 그 과정에서 지역 목축의 자율성은 위축되었다. 하지만 포천 주민들은 고지대 초지에서의 자연 방목과 전통적 사료 조합을 유지하며 한우 혈통의 순수성을 이어갔다.
1970~80년대 들어, 포천시와 농촌진흥청은 ‘포천 황소 육성 시범지구’를 조성하며 지역 한우의 품질 인증과 표준화 작업을 시도했다. 그리고 2005년 이후, ‘포천 한우’라는 이름이 전국에 알려지며 지역 축산물이 아닌 프리미엄 브랜드 한우로 재도약하게 된다.
오늘날 포천 한우는 유전자 이력 관리, 친환경 조사료 급여, 산지 직거래 시스템, 6차 산업 관광 연계 등을 통해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현대적인 품질 기준을 만족하는 고급 특산물로 정착되었다. ‘한우 명품화 사업단’은 매년 ‘포천 한우 축제’를 개최해 과거 봉토와 궁장의 역사적 스토리를 문화 콘텐츠로 풀어내고, 지역 농가 소득 증대와 유통 다변화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포천 한우, 역사와 함께 익은 붉은 품격
포천 한우는 단순한 고기 이상의 존재다. 그 고기 속에는 조선의 사냥 문화, 궁중 의례, 사찰 공양, 봉토 제도 등 한반도의 정치·문화·경제 시스템이 응축되어 있다. 한 마리 황소의 이동 경로는 사냥터에서 궁궐로, 봉토에서 민가로, 다시 시장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궤적이며 역사와 생명의 순환 고리이다.
포천 들판에서 방목된 소가 궁궐의 제례상에 오르고, 사찰의 공양간을 거쳐, 오늘날 프리미엄 한우로 다시 밥상에 오르기까지 그 여정은 이 지역 주민들이 자연과 전통을 지켜온 결과이며, 문화와 농업이 만난 한국형 가축문화의 모범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도 포천 한우는 그 고유의 풍미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역사의 품격을 함께 기억하는 식문화 유산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지역 특산물의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충북 보은 대추, 속리산 법주사 승려들이 키운 붉은 선물 (0) | 2025.07.18 |
---|---|
전북 군산 굴비, 일제 수탈기의 염장문화가 남긴 생선 유산 (0) | 2025.07.17 |
경남 창녕 양파, 개화기 일본 농정 기술과 지역 자립의 교차점 (0) | 2025.07.16 |
강원 태백 고랭지 무, 탄광 마을 도시락 반찬에서 식탁 위 유산으로 (0) | 2025.07.15 |
경기 양평 딸기, 조선 농정 개혁기 속 과실농업의 시작 (0) | 2025.07.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