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특산물의 역사

경북 안동 간고등어, 왜 조선시대에 가장 귀한 생선이었을까

insight-2007 2025. 6. 27. 14:48

바다와 멀어진 도시에서 고등어가 살아남은 이유

경상북도 안동은 지도상으로 보면 바다와는 거리가 먼 내륙 도시다. 동해안으로부터 120km 이상 떨어져 있으며, 오늘날에도 자가용으로 2시간 넘게 달려야 바닷가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안동에서 고등어가, 그것도 '간고등어'라는 이름의 지역 특산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은 매우 역설적이다. 고등어는 대표적인 바다 생선이고, 잡은 직후부터 빠르게 부패가 진행되는 식재료다. 안동에서 고등어가 유명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한 맛 때문이 아니라, 그 이면에 자리 잡은 조선시대 유통 문화와 생활의 지혜, 그리고 종가문화 속에서 정립된 식생활 체계 때문이다.

 

경북 안동 간고등어 조선시대 가장 귀한 생선

 

조선 후기, 안동은 경상도 내륙의 중심지로서 행정, 교육, 문화를 아우르던 도시였다. 특히 유교적 종가문화가 발달하며 제례와 접객에 사용되는 음식의 질과 정결함이 강조되었고, 그에 따라 신선한 해산물을 구하는 일은 늘 중요한 과제였다. 바닷가에서 고등어를 실어 오기 위해서는 수일이 걸렸고, 생선은 상하기 일쑤였다. 이에 따라 안동 사람들은 고등어를 소금으로 절여 보존하고, 바람에 말리는 방식을 통해 그 맛과 품질을 유지하는 방식을 고안해냈다. 이 지혜는 훗날 '안동 간고등어'라는 이름으로 체계화되어 전통으로 계승되었고, 한반도 내륙의 생선 보존 역사 중에서도 독보적인 사례로 남게 되었다.

조선의 생선 유통사에서 안동 간고등어가 갖는 의미

조선시대의 식문화는 단순히 조리 방식에 그치지 않고, 재료를 어디에서, 어떻게 들여오는가를 매우 중시했다. 오늘날처럼 냉장·냉동 유통망이 없던 시대, 신선 식품을 내륙 지방까지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고등어는 기름기가 많고 조직이 부드러워 잡은 직후부터 부패가 시작되는 어종으로, 산지에서 소비지까지 운반하는 데에 철저한 방식이 요구되었다.

동해안 어민들은 고등어를 잡자마자 소금으로 간을 했고, 그 생선을 대나무 바구니짚으로 엮은 상자에 넣어 육로를 통해 안동으로 보냈다. 17세기 무렵에는 이미 동해안과 안동 간의 생선 운송 경로가 상업적으로 정립되어 있었고, 소금 간과 자연 건조를 조합한 생선 보존 방식은 효율적이면서도 매우 실용적인 방식이었다. 간고등어는 단순히 ‘짠 생선’이 아닌, 조선의 내륙 물류 구조 속에서 탄생한 생활기술 기반의 발명품이었다.

이러한 유통 구조는 조선 후기에 이르러 지방 장시(場市)와 연결되며 더욱 확장되었다. 안동에서는 오일장날에 맞춰 고등어가 유통되었고, 이때 간고등어는 염장 상태이므로 저장성이 높아, 장을 찾는 일반 서민부터 종갓집 며느리까지 누구나 믿고 살 수 있는 중요한 식재료로 취급되었다.
특히 안동은 안동김씨, 예안이씨, 진성이씨 등 유력 가문들이 모여 살던 유교 중심 도시였기 때문에, 고등어는 귀한 손님을 맞이할 때나 큰 제례를 준비할 때 반드시 올라가야 하는 품목으로 여겨졌다.

고등어 한 마리에 담긴 유교 문화와 제례의 품격

조선의 유교 문화에서 제례는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가문과 인격의 수준을 보여주는 가장 핵심적인 의례였다. 제사상에 어떤 음식을 올릴 것인가, 얼마나 정갈하게 준비되었는가에 따라 그 집안의 도덕성과 위엄이 평가되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생선은 매우 중요한 제물이었다. 특히 고등어는 몸통이 반듯하고 비늘이 가지런해 ‘흠 없는 제물’로 적합했으며, 맛이 강하지 않아 다른 음식과 조화를 이루는 장점도 있었다.

하지만 바다와 멀리 떨어진 안동에서 생선을 신선한 상태로 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했다. 그렇기 때문에 소금으로 간을 하고, 바람에 말려 유통된 '간고등어'는 유교적 제례문화의 요구와 유통 현실을 동시에 만족시킨 혁신적인 식재료였다. 종갓집에서는 간고등어를 손질하고 굽는 법도 엄격하게 전수했다. 기름기 없이 구워내야 했고, 머리와 꼬리를 잘리지 않은 채로 올려야 예법에 맞는 제사 음식이 되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간고등어 굽는 법을 배우는 것으로 가사 교육을 시작했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간고등어는 음식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문화적 상징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간고등어는 명절 음식, 혼례상, 손님 접대 요리로도 자주 사용되었다. 생선을 굽는 연기와 소금 향은 마을 안에 퍼졌고, 그것은 이웃과 가족, 공동체가 하나로 연결되는 정서적 장면이 되었다. 즉, 간고등어는 단지 ‘먹는 것’이 아니라, 한 지역의 시간과 감정을 묶는 문화적 매듭이었다.

전통의 계승과 현대적 부활, 그리고 미래

현대에 들어서면서 안동 간고등어는 지역 특산품을 넘어 ‘전국구 반찬’으로 자리 잡았다. 고등어 자체가 한국인의 식탁에서 익숙한 생선이기도 하지만, ‘안동 간고등어’는 그 이름 자체로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실제로 2000년대 초반, 안동시는 간고등어의 유래와 전통성을 담아 상표 등록을 추진했고, 지역 기반 중소기업들이 HACCP 인증을 받은 위생 가공 시설을 통해 대량 생산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안동 간고등어 축제, 간고등어 요리경연대회, 간고등어 손질 체험 프로그램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개발되었고, 이는 관광과 연계된 체험형 교육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해외 수출도 활발히 추진 중이며, 일본과 미국 등지에서는 '한국식 염장생선의 전통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고등어가 단순한 경제상품으로만 소비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이 음식에는 조선의 지리, 물류, 종교, 문화, 가족 구조까지 다양한 층위가 녹아 있다. 간고등어가 보존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지 생산량이나 판매량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정서를 사람들과 함께 기억하고 나누는 태도다. 안동 간고등어는 우리가 매일 먹는 반찬 한 접시에서 역사와 전통을 어떻게 되살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예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