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특산물의 역사

경남 밀양 대추, 조선시대 혼례 필수품이 된 이유는?

insight-2007 2025. 6. 28. 08:46

밀양 대추는 단순한 과일이 아니었다

경남 밀양은 수려한 자연환경과 유구한 전통을 간직한 고장이다. 그중에서도 ‘밀양 대추’는 오랜 역사와 문화적 깊이를 가진 특산물로, 단순히 맛 좋은 과일을 넘어 조선시대 의례와 혼례 문화의 중심에 서 있던 작물이었다. 특히 조선의 유교 사회에서 혼례는 가문의 위상을 드러내는 중요한 예식이었고, 이때 반드시 포함되어야 했던 상징물이 바로 대추였다. 그중에서도 밀양에서 재배된 대추는 예법상 특별한 가치를 지닌 품종으로 여겨졌다.

경남 밀양 대추 조선시대 혼례 필수품


대추는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상징이자, 신랑 신부의 혼인을 정당하게 성립시키는 절차 속에서 의례적으로 사용된 핵심 재료였다. 이 글에서는 조선시대 혼례 예법 속에서 왜 ‘밀양 대추’가 반드시 필요했는지, 그리고 밀양이 어떻게 대추의 명산지로 자리 잡았는지를 역사 중심으로 깊이 있게 살펴본다.

밀양 대추의 기원과 품종적 특성, 삼국시대부터의 재배 역사

밀양은 기후, 토양, 수분, 일조량이라는 네 가지 농업 요소에서 모두 우수한 조건을 갖춘 천혜의 과일 재배지다. 특히 낙동강과 밀양강이 만나는 구릉지대는 배수가 뛰어나면서도 뿌리가 깊게 뻗을 수 있는 사질양토 성분을 가지고 있어, 밤나무와 대추나무 같은 고목류의 생육에 적합한 환경이다. 이 지역의 대추나무 재배는 단지 현대에 시작된 일이 아니라, 신라와 고려를 거쳐 조선에 이르기까지 1,000년 이상을 이어온 역사적 농업 문화였다.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 등 조선 초기의 지리서에는 밀양이 대추의 산지로 언급되며, ‘향이 진하고 알이 굵으며 껍질이 단단하다’는 품질에 대한 묘사까지 함께 남아 있다. 이는 단순한 품질 자랑이 아니라, 밀양 대추가 궁중 진상품 혹은 공물(貢物)로 지정되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조선시대에는 지역 관청이 수확 시기가 되면 농가를 조사하고, 일정량의 대추를 수집해 중앙 정부에 상납하는 공납 체계가 작동했고, 밀양은 경남 지역에서 대추 공납의 중심지 역할을 맡았다.

또한 밀양 대추는 ‘정조 대추’라고 불리는 전통 품종의 한 갈래로, 당도가 높고 씨앗이 작으며 육질이 단단한 특성을 가진다. 이 품종은 수세가 강하고 내병성이 우수해 세대를 넘어 장기간 재배가 가능하며, 이는 종가(宗家) 문화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오래된 밀양 종갓집에서는 100년 이상 된 대추나무가 지금도 마당에 남아 있고, 매년 수확한 대추를 폐백과 제례에 활용하며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밀양 대추는 단순한 작물이 아니라, 세대를 잇는 삶의 상징이자 문화적 유산이었다.

조선의 혼례 예법 속 대추의 상징성과 필수성

조선시대 혼례는 단순한 결혼이 아니라, 가문 간의 결합을 상징하는 국가적·사회적 의례였다. 『국조오례의』에 따르면 혼례에는 납채(納采), 납폐(納幣), 친영(親迎) 등 다섯 가지 절차가 있으며, 이 가운데 대추는 납폐와 폐백 과정에서 핵심적인 상징물로 등장한다. 납폐는 신랑이 신부 측에 예물과 함께 '혼례를 약속한다'는 상징물(夜幣)을 보내는 절차인데, 이때 예물 상자(함) 안에는 반드시 밤과 함께 대추를 넣었다. 밤과 대추는 다산, 혈통의 연속, 자손 번창의 기원을 담는 의례적 기호로 간주되었다.

그 중에서도 ‘밀양산 대추’는 전국 혼례 시장에서 유독 높은 가치를 지녔다. 기록에 따르면 18세기 후반, 영남 지역 사대부가에서는 ‘밀양 대추를 구하지 못하면 혼례를 미루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예법적 권위를 인정받았다. 밀양 대추는 단단한 껍질 덕분에 장거리 운송이 가능했고, 껍질에 상처가 적어 제물(祭物)로도 적합했다. 특히 궁중 혼례나 대형 종가의 혼례에서는 공납 대추 가운데에서도 밀양산 대추를 선별해 사용했다는 기록이 『승정원일기』를 비롯한 궁중 문헌에 남아 있다.

폐백 절차에서는 신부가 시부모에게 절을 올린 뒤, 준비된 밤과 대추를 신랑의 어머니가 신부의 치마에 던져주는 장면이 있다. 이 행위는 ‘대추와 밤처럼 자손을 많이 낳으라’는 의미가 담긴 주술적 행위이자 축복의 언어였다. 이때 사용되는 대추는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가문을 잇는 혈통을 상징하는 정결한 제물이어야 했기에, 조선의 상류 사회에서는 반드시 명산지 대추를 엄선해 사용했다. 밀양 대추는 바로 이 역할에 가장 부합하는 품종으로 꼽혔던 것이다.

오늘날 밀양 대추의 계승, 산업화와 문화 자산화

현대에 들어서면서 밀양 대추는 전통 의례에서의 상징성을 유지하면서도, 건강식품과 지역 산업으로서의 확장성을 동시에 실현하고 있다. 밀양시는 1990년대부터 ‘밀양 대추 명품화 사업’을 추진해, 유기농 재배 기반 확대, 전통 품종 복원, 가공품 다각화를 통해 대추 산업을 다층화해왔다. 특히 ‘밀양 정조대추’ 품종은 농촌진흥청에서 우수 품종으로 등록되었고, 말린 대추, 대추즙, 대추차, 대추잼, 대추막걸리 등 다양한 가공품으로 상품화되어 전국 유통망에 진입했다.

또한 ‘밀양 대추축제’는 지역민과 관광객이 함께 즐기는 문화행사로 성장했다. 이 축제는 단순한 수확의 기쁨을 나누는 자리를 넘어서, 혼례 문화와 연계한 전통문화 콘텐츠로 확장되었다. 실제로 축제에서는 조선식 전통 혼례 재현, 폐백상 체험, 함포장 시연 등 대추와 혼례 예법을 연결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이는 지역 정체성과 역사적 맥락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문화재적 가치 보존에도 힘을 쏟고 있다. 오래된 대추나무 군락은 ‘전통 대추나무 보호림’으로 지정되었고, 지역 초등학교나 문화센터에서는 ‘대추 이야기 들려주기’ 같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젊은 농부들은 전통 재배법과 현대 기술을 접목해 스마트팜 기반 대추 농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는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전통 계승의 실질적 사례라 할 수 있다.
밀양 대추는 이제 ‘단순한 먹거리’에서 ‘시간을 담은 이야기 자산’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대추 한 알로 이어지는 예법과 문화의 힘

조선시대 혼례는 예법의 극치였다. 밤과 대추는 그 의례 속에서 생명을 기원하고, 가문을 잇고, 부부의 연을 영원히 염원하는 상징물로 기능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밀양 대추는 역사적 배경, 품종적 우수성, 유교 예법과의 궁합이라는 세 요소를 모두 갖춘 작물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마트에서 쉽게 대추를 사 먹지만, 과거 밀양에서 길러진 대추는 혼례의 핵심이자 가문의 기원에 대한 믿음을 담은 성스러운 과일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금도 밀양에서는 오래된 대추나무가 매년 가을 붉은 열매를 맺는다. 그 나무 아래에는 수백 년 전 누군가의 손으로 심어진 씨앗이 있고, 그 씨앗을 통해 자손과 가문, 지역과 국가가 연결된다. 대추는 단지 열매가 아니라, 시간과 문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다.
밀양 대추는 지금 이 순간에도 조선의 유교 정신과 농업의 전통, 그리고 혼례 문화의 상징으로서 조용히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