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특산물의 역사 74

강원 태백 고랭지 무, 탄광 마을 도시락 반찬에서 식탁 위 유산으로

도시락 속에 피어난 유산, 태백 고랭지 무의 시간대한민국 강원도 태백은 예로부터 ‘광산의 도시’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한때 석탄 산업의 중심지였던 이곳은, 20세기 중반까지 전국에서 몰려든 광부들의 고향이자, 생계의 터전이었다. 그들은 어두운 갱도 속에서 하루를 보내고, 그 하루를 견디기 위해 도시락을 싸 들고 새벽녘에 산을 올랐다. 그리고 그 도시락 속에는 항상 일정하게 등장하는 반찬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태백의 찬 기운 속에서 자란 고랭지 무였다. 태백은 해발 700미터 이상 고지대에 위치해, 여름에도 기온이 낮고 밤낮의 온도 차가 커서, 당도가 높고 아삭한 식감의 무가 잘 자란다. 이러한 고랭지 무는 단지 품질이 뛰어난 농산물일 뿐 아니라, 광부들의 노동과 생존을 지탱한 소박한 식사의 핵심..

경기 양평 딸기, 조선 농정 개혁기 속 과실농업의 시작

조선의 밭에서 과일이 자라기 시작하던 때딸기는 오늘날 가장 대중적인 과일 중 하나다. 상큼한 향기와 부드러운 식감, 그리고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선명한 붉은빛 덕분에 계절을 대표하는 과일 그 이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한국에서 딸기가 본격적으로 재배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딸기와 유사한 과일류 혹은 초기 품종군이 이미 조선 후기 농정 개혁기 즈음부터 양평을 포함한 일부 내륙 지역에서 시도되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기록들이 존재한다. 경기도 양평은 조선 시대에도 수도 한양과 가까운 전략적 곡창지대였으며, 특히 정조(正祖) 대에 들어서면서 과수 재배 실험과 농정 개혁의 시험장으로 기능한 지역 중 하나였다. 『정조실록』과 『규장전운』 등의 문헌에는 ..

경북 영덕 복숭아, 선조들이 왕세자에게 바친 여름 과일의 기록

여름 궁궐로 향하던 과일 바구니 속, 영덕 복숭아의 자리대한민국에서 여름 과일을 이야기할 때 복숭아는 빠질 수 없다. 부드러운 털, 향긋한 단맛, 풍부한 과즙을 지닌 복숭아는 더운 계절에 사람들의 입맛을 달래주며 다양한 품종으로 사랑받아왔다. 하지만 복숭아는 단지 계절 과일이 아니라, 오랜 역사 속에서 왕실의 진상품이자 고위 관료가 귀한 손님에게 내놓던 ‘격 있는 과일’로 특별한 지위를 차지해온 과일이기도 하다. 특히 경상북도 영덕군에서 생산되는 복숭아는 조선 시대부터 진상 과일로 주목받았다. 『승정원일기』와 『조선왕조실록』 일부 기사에는 경상도 지역 복숭아의 진상 기록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그중에서도 영덕, 예천, 상주 등의 복숭아가 왕세자와 세자빈의 여름 식단에 올랐다는 표현이 확인된다. 이 기록은..

경북 성주 참외, 신라 왕실 정원에서 자란 노란 과일 이야기

신라의 정원에서부터 시작된 노란 과일의 기원경상북도 성주는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참외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햇살 좋은 들녘에 노랗게 익어가는 참외는 봄과 여름을 알리는 대표적인 과일이며, 전국 참외 생산량의 70% 이상을 성주가 차지할 정도로 지역 경제와 문화의 중심 품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노란 과일이 단순한 지역 농산물을 넘어, 깊은 역사적 뿌리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성주의 참외 재배 역사는 그 기원이 무려 신라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그리고 『동국여지승람』 등 조선 시대 기록에 따르면, 성주 지역은 신라 왕실의 별궁이 위치했던 곳으로, 궁궐 정원에서 귀한 과실이 재배되었다는 구절이 등장한다. 이 중 참외는 왕실의 후원(後苑),..

전남 신안 천일염, 고려·조선 시대 염전세와 백성의 눈물

바다보다 뜨거운 땅, 소금으로 세금을 냈던 섬의 역사전라남도 신안은 천일염의 대표 산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드넓은 염전과 햇빛, 바닷물 그리고 바람이 만드는 이곳의 소금은 그 품질과 생산량 모두에서 국내 최고 수준을 자랑하며, 신안 천일염은 단순한 조미료를 넘어 ‘건강한 소금’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소금이 빛을 내기까지의 시간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과거 이곳은 소금을 캐기 위해 사람들이 땀과 노동을 바쳤고, 심지어는 소금을 세금으로 바쳐야 했던 고달픈 역사의 무대였다. 고려와 조선 시대, 신안과 같은 염전 지역은 국가가 직접 소금 생산을 통제하거나, 백성에게 세금으로 걷어들였다. 이를 염전세(鹽田稅) 또는 염세(鹽稅)라 불렀으며, 이는 단순한 조세 제도가 아니라 백성의..

전남 여수 돌산갓, 조선 김장문화 속 항아리 옆을 지키다

김장독 옆에서 자리를 지켜온 ‘붉은 줄기’, 돌산갓의 시간겨울이면 많은 이들의 손끝이 분주해진다. 배추를 절이고 고춧가루를 풀고, 생강과 마늘을 갈아 넣는 과정은 오랜 세월 한국인의 겨울 풍경으로 이어져 왔다. 그러나 김치의 중심에는 언제나 배추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남도의 바닷가, 특히 전남 여수 돌산에서는 배추김치 옆에 갓김치가 늘 함께 자리했다. 그 중에서도 ‘돌산갓’은 단순한 부재료가 아닌, 남도 김장문화의 정체성과 별미로 자리 잡은 귀한 채소였다. 전남 여수시 돌산읍 일대는 조선시대부터 염전과 해조류, 소금 생산지로 유명했지만, 동시에 짭조름한 바닷바람과 따뜻한 기후, 해풍이 만드는 독특한 토양이 채소 재배에 적합한 지역으로도 알려져 있었다. 특히 갓은 겨울철에도 쉽게 시들지 않고, 아린 맛과..

충북 음성 감자, 병자호란 피난민들이 남긴 구황작물의 문화사

굶주림을 피해 뿌리내린 감자 한 알, 음성 땅에 남은 시간의 흔적충북 음성은 오늘날 전국적으로도 감자의 대표 산지 중 하나로 꼽힌다. 음성에서 생산되는 감자는 저장성이 뛰어나고 전분 함량이 높아, 감자전·감자떡 등 지역 향토음식에 활용될 뿐 아니라 전국 시장에서도 꾸준히 수요가 있는 주요 작물이다.그러나 음성 감자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시작은 결코 풍요로운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1636년 병자호란, 조선은 청나라의 침입으로 인해 대규모의 피난 사태를 겪게 되고, 충청북도 음성 지역은 당시 한양과 남부 지방 사이의 경계선 피난처로 기능하면서 다양한 피난민들이 모여든 땅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이 무렵부터 충북 음성 일대에 감자, 고구마, 옥수수 같은 새로운 작물들이 전래되었으며, 이 중..

강원 삼척 미역줄기, 산간 해녀문화가 전해준 잊혀진 해초의 역사

미역의 줄기, 삼척의 여성들이 건져 올린 생활의 기록강원도 삼척은 동해와 맞닿은 바닷마을이지만, 동시에 험준한 산지가 바다와 거의 맞닿은 지역이다. 그 덕분에 삼척의 해산물 문화는 내륙과 해안의 경계선 위에서 오랜 시간 독자적으로 발전해왔다. 그중에서도 미역은 이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 해초 식재료 중 하나지만, 오늘날 많은 이들이 그 부속물인 ‘미역줄기’에 담긴 역사와 문화적 의미를 간과한다.한때는 미역보다 오히려 더 귀하게 다뤄지던 미역줄기.조선시대 삼척 일대의 해녀들은 줄기만 따로 채취해 염장·건조하여 진상품으로 바쳤고, 특히 강원 영동 지역에서는 미역줄기를 산간부의 약식, 보양식, 부녀자의 산후 회복 음식으로 전승해왔다.미역은 전통적으로 자궁을 보호하고 피를 맑게 해준다고 여겨져 ‘산모 음식’으로 ..

전남 장흥 표고버섯, 조선 약재 목록에서 찾은 그늘 아래 명약

산 그늘 속에 자란 향, 약재가 되다전라남도 장흥은 지금도 ‘표고버섯의 고장’이라 불린다. 그늘지고 습한 산자락 아래에서 자라나는 표고버섯은 고소한 향과 깊은 맛을 지닌 웰빙 식재료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기원은 단지 현대 건강식품 산업에만 머물지 않는다.조선시대의 의서와 약방 기록 속에서도 표고는 ‘향균(香菌)’ 또는 ‘향균초(香蕈草)’로 불리며 귀한 약재 중 하나로 취급되었고, 왕실과 사대부가에서도 감기·해열·기력회복에 좋은 약재이자 귀한 산중 음식으로 여겨졌다. 특히 장흥은 남부 해안과 인접하면서도 해풍을 막는 산악지대가 잘 조성되어 있고, 해마다 일정한 습도와 온도를 유지하는 삼림 구조 덕분에 자연 표고버섯 재배에 이상적인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이런 지역적 특성과 조선 후기 약재 목록 속 ‘..

경북 울진 대게, 조선 해양일기에 기록된 ‘대가리 큰 게’의 탄생사

‘대가리 큰 게’라 불린 그날부터, 울진 바다의 전설은 시작됐다경북 울진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게 산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겨울이면 울진 죽변항과 후포항 일대에는 선홍빛 대게를 손에 들고 줄지어 선 사람들로 북적인다. 하지만 이 대게가 언제부터 ‘울진의 대게’로 불리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특별한 수산물로 여겨지게 되었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게라는 명칭은 조선시대 문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조선 후기에 쓰인 『해유록(海遊錄)』에는 “경상도 울진 근해에 다리가 길고 대가리가 큰 게(大介)가 있어 배 위에서 잡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는 대게에 대한 가장 이른 시기의 언급 중 하나로, ‘대게’라는 말의 어원이 ‘몸집이 크고 다리가 긴 게’, 또는 ‘대가리가 크다’는 민간 표현에서 비롯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