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산섬의 바람 속에서 태어난 뿌리채소의 전설제주도 동쪽 끝, 구좌읍은 거친 바람과 푸른 바다, 그리고 검붉은 화산회토가 만나는 땅이다. 이곳은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가장 품질 좋은 당근이 재배되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뿌리는 단순히 현대 농업의 성취에만 있지 않다. 구좌 당근의 배경에는 조선 후기라는 역사적 시기, 제주 특유의 환경, 그리고 지역민들이 세대를 이어 쌓아올린 농업 지혜가 깊이 스며 있다. 조선 후기는 중앙과 지방의 정치·경제 질서가 안정되면서 농업의 품종과 재배 방식이 다양해지던 시기였다. 그러나 제주도는 육지와 달리 곡물 재배에 불리한 환경을 극복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채소와 특용작물이 중요한 식량·교역 자원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뿌리채소는 저장성이 뛰어나고 영양가가 높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