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석류는 어떻게 전해졌고, 왜 특별한가?
전라남도 고흥은 따뜻한 남해의 기운을 품은 과일의 고장이다. 그중에서도 ‘고흥 석류’는 전국적으로 가장 유명한 석류 산지로, 붉고 진한 과육과 높은 당도, 깊은 향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다. 그러나 고흥 석류의 특별함은 단지 맛이나 품질에 있는 것이 아니다. 고려 말 혹은 조선 초기, 중국 사신이 고흥에서 석류를 맛본 뒤 감탄하여 씨앗을 가져가 중국 황실에 전달했다는 지역 전설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야기의 진위 여부를 떠나, 석류 한 알이 나라 사이를 오가며 외교와 문화, 감동과 기념이 뒤섞인 역사적 교류의 상징이 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인상 깊다. 더욱이 석류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 건강을 위한 열매, 다산과 번영의 상징, 신비롭고 치유적인 과일로 인식돼 왔다. 조선시대에는 『동의보감』과 『본초강목』에서 석류를 기혈 보충, 피부 미용, 자궁 건강에 좋은 과일로 소개했고, 제사와 결혼 풍습에서도 석류는 여성성과 생명의 상징으로 활용되었다.
고흥은 남해의 해풍, 적당한 습도, 배수가 좋은 토양, 일조량 등 석류 재배에 최적화된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석류가 가장 잘 자라며 오랫동안 재배가 이어져 왔다. 이 글에서는 고흥 석류가 어떻게 외교의 전설과 함께 지역에 뿌리내렸는지, 조선의 의학과 풍습에서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그리고 오늘날까지 어떻게 그 문화와 가치가 계승되고 있는지를 역사적으로 조명해본다.
고려~조선 시대, 석류의 전래와 ‘고흥’이라는 토착화의 땅
석류는 원래 페르시아(현 이란) 지역이 원산지이며, 고대 중국을 거쳐 한반도로 전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확한 도입 시점은 명확하지 않지만, 고려 후기에 이미 석류나무가 왕실 정원과 절의 뜰에 심겼다는 문헌이 등장한다.
『고려사』에는 “붉은 열매가 익으면 향이 감돌고, 여성에게 이롭다 하여 궁중에 많이 들였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고흥의 석류 전설은 이와 맞물린다. 고려 말, 중국 명나라에서 파견된 사신이 고흥 일대를 지나다 고을 현령이 선물한 붉은 과일을 맛본 뒤 큰 감명을 받아 씨앗을 가지고 돌아가 황실에 헌상했다는 이야기가 지역에 전해진다. 이 이야기는 전남 고흥군 도덕면, 풍양면, 점암면 일대의 석류밭을 중심으로 ‘사신 석류밭’, ‘황석류’라는 지명이 생긴 근거가 되었으며, 지금도 일부 지역 어르신들은 이를 입으로 전한다.
이와 별개로 조선 초기에도 석류는 진상품 또는 혼례용 과일로 간간이 중앙에 올려졌으며, 영조 이후에는 일부 사대부 가문에서 여성의 피부와 생리 건강을 위해 석류즙을 따로 만들었다는 문헌이 남아 있다.
고흥은 이처럼 외래 작물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뿌리내린 지역이었고, 석류는 그 대표적인 예였다. 이 전래와 정착의 과정은 단순한 재배를 넘어, 국가 간 감정 교류와 지역 정체성의 시작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여성성과 건강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석류의 민속적 의미
석류는 고대부터 다산과 여성의 생명력을 상징해 왔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붉은 과육과 수많은 씨앗은 자손 번창, 여성의 건강, 혼인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조선 역시 이러한 관념을 적극 수용했다.
『동의보감』에서는 석류를 “성질이 따뜻하고, 심장을 안정시키며, 음혈을 보하고, 특히 여성의 자궁을 보호한다”고 기록했고, 『향약집성방』에는 “석류즙은 산후통과 월경 불순에 이롭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에 따라 석류는 양반가의 규수나 산모, 신부에게 내리는 귀한 과일로 여겨졌고, 혼례 때 신부가 첫날밤 먹는 과일로 정해졌다는 풍속도 남아 있다.
고흥에서는 이 전통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석류 농가에서는 딸을 시집보내는 날 석류 한 알을 머리에 얹고, 속옷에 씨를 몇 개 넣어 건강과 다산을 기원하는 풍습도 일부 남아 있었고, 지금도 석류즙은 어머니들이 딸을 위한 건강식으로 챙기는 대표적인 전통 보양식으로 소비된다. 또한 제사상에도 석류는 자주 올랐는데, 붉은 색이 잡귀를 막고, 다산과 가계의 번영을 비는 상징적 음식으로 간주되었다. 특히 고흥의 가을철 제사에서는 직접 딴 석류를 반으로 가른 뒤 참기름을 한 방울 떨어뜨려 조상께 바치는 방식도 존재했다.
고흥의 자연 조건이 만든 ‘최적의 석류 산지’라는 이름
석류는 기온 변화에 민감하고, 습기에 약하며, 수확 후 저장이 어려운 작물이다. 그러나 고흥은 대한민국 남단에 위치하면서도 해풍이 강하지 않고, 일조량이 풍부하며, 토양 배수가 좋은 해안선 지형을 갖추고 있어 석류 재배에 매우 적합하다.
고흥의 석류는 타 지역에 비해 씨앗이 적고 당도가 높으며, 껍질이 얇고 과육이 촘촘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런 특성은 자연 환경과 재래 품종의 유지, 전통 방식의 비료 사용에서 비롯된다. 특히 고흥 석류는 화학 비료나 제초제 없이 키우는 전통 농법을 고수하며, 수확 시기에도 과숙(過熟) 전 수확 후 자연 숙성 방식을 택해 석류 고유의 풍미와 약성을 보존하고 있다. 이 덕분에 고흥 석류는 ‘붉은 약’이라 불릴 만큼 건강식품으로서의 가치도 높게 평가된다.
고흥군은 2010년 이후 석류를 지역 특산품으로 본격 육성하며, 석류 농가 단지 조성, 석류연구센터 설립, 지역축제와 연계한 석류 관광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여전히 전통을 지키며 석류를 가꾸는 농민들과 석류에 얽힌 지역의 문화 자부심이 있다.
오늘날의 고흥 석류 산업과 전통의 계승
현재 고흥 석류는 생과일 석류뿐 아니라 석류즙, 석류진액, 석류엑기스, 석류 젤리, 석류 화장품 등 6차 산업 제품으로도 다양하게 확장되고 있다. 특히 ‘고흥 석류’라는 지역 브랜드는 여성 건강 제품 시장에서 높은 신뢰를 받고 있으며, 유기농 인증 및 지리적 표시제 등록도 추진 중이다.
고흥에서는 매년 가을 ‘고흥 석류 축제’를 개최해 석류 수확 체험, 전통 약차 시음, 석류 전설극 공연 등 문화형 농산물 콘텐츠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지역 학교에서는 석류에 대한 지역사 교육도 함께 이루어지고 있어, 아이들에게 석류가 단지 과일이 아니라 지역의 역사이자 가족의 유산으로 인식되도록 하는 노력이 이어진다.
고흥 석류는 이제 단지 붉은 열매가 아니라, 고려 말 외교 사절의 감동, 여성 건강을 위한 민속 지혜, 자연과 농민의 정성이 결합된 지역 문화 유산으로 자리 잡았다. 붉은 과육 하나하나마다 담긴 시간은 전설에서 시작해 삶으로 이어지는 진짜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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