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 51

전남 해남 고구마, 불교 절에서 시작된 구황 작물의 반전 역사

고구마는 어떻게 절에서 자라나 조선을 구했을까?전라남도 해남은 '땅끝마을'로 알려진 아름다운 해양도시이자, 전국 고구마 생산량 상위권을 자랑하는 대표적인 고구마 산지다. 하지만 해남 고구마의 뿌리는 단순한 농산물에 그치지 않는다.그 역사적 기원은 조선 후기 불교 사찰의 자급자족 농사와 구황(救荒) 활동에서 비롯된 것으로,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고구마 한 알 속에는 배고픔을 막기 위한 자비와 생존의 기억, 그리고 땅과 사람이 함께 만든 농업 유산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조선 후기, 유교가 국가 이념이었고 불교는 공식적으로 억제되던 시기에도, 남도의 절집들은 산간과 해안의 오지를 기반으로 자급자족의 농경과 약초 재배, 식량 보급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했다. 이때 사찰 주변에서 실험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한..

경북 영양 고추, 안동 권번과 양반가의 밥상을 붉게 물들이다

영양 고추, 조선 상류층 밥상의 색과 기운을 만든 붉은 유산경상북도 영양은 고추의 본고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고장의 고추는 단순히 매운맛을 내기 위한 조미료가 아니라, 조선 후기에 안동 양반가와 권번(券番, 여성 교육기관)의 상차림을 붉게 물들인 음식문화의 상징이었다.고추는 임진왜란 이후 한반도에 전래된 작물로, 그 정착 과정은 단순한 작물 도입이 아니라 지역의 지리·기후·문화·계급 구조에 따라 독특하게 분화된 채택과 진화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영양 고추는 맵지만 깔끔하고, 씨가 적으며, 육질이 단단해 가루로 빻아도 색이 곱고 발효성이 뛰어나 상류층의 장과 김치, 탕류에 주로 사용되었다. 특히 안동과 영양 일대는 조선 후기 유림과 양반 문화를 대표하는 지역으로, 상차림의 격식과 미감..

충남 서산 생강, 조선 왕실의 감기약이 된 뿌리의 비밀

서산 생강, 한 뿌리의 향이 전한 조선의 건강 지혜충청남도 서산은 갯벌과 평야, 그리고 내륙의 산자락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땅이다. 그 땅 아래에서 오래전부터 자라난 생강(생강나무의 뿌리줄기)은 단지 향이 강한 조미료나 차 재료가 아니었다.조선 왕실의 내의원과 약방에서는 서산 생강을 감기·해열·소화제의 원료로 활용했고, 『동의보감』, 『향약집성방』, 『태산요록』 등에는 서산 지역 생강의 약효가 구체적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즉, 서산 생강은 단지 향미나 미각을 위한 식재료가 아니라, 조선의학과 궁중 보건 체계 속에서 '신뢰받는 약재'로 기능했던 귀한 뿌리였다.서산은 해풍과 일조량, 배수가 잘되는 모래흙 토양 덕분에 섬유질이 풍부하고 향이 강한 생강을 재배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이런 자연조건은 ..

경남 남해 멸치, 단순한 젓갈이 아닌 바다 문화의 핵심

남해 멸치, 조선의 세금이자 민속의 기록이 되다경상남도 남해는 오늘날에도 ‘멸치의 고장’으로 불리지만, 멸치가 진정으로 특별한 이유는 그 조그마한 생선에 국가, 민속, 제례, 바다 공동체의 수백 년 역사가 함께 담겨 있기 때문이다.남해 멸치는 단순히 반찬거리가 아닌, 조선 시대 국가 운영의 경제 체계와 식문화 전통의 실체를 구성했던 핵심 수산 자원이었다. 실제로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상도속찬지리지』 등 여러 관찬지리지에는 남해를 포함한 경남 해역에서 연중 대량의 멸치가 어획되고, 그것이 ‘어염세(魚鹽稅)’ 형태로 궁중과 관청에 납부되었다는 기록이 일관되게 나타난다.멸치는 물고기 중에서도 특별히 염장이나 젓갈로 가공이 가능해 유통 범위가 넓고 저장성이 뛰어난 해산물로 인식되었기 때문..

전남 완도 전복, 고려시대 공물로 쓰인 귀한 해산물의 역사

고려 임금에게 올려지던 전복, 완도의 바다에서 길러진 귀한 생명의 흔적오늘날 전복은 고급 해산물의 대명사로 여겨지며, 건강식이나 보양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전복이 이렇게 귀하게 여겨진 역사는 단지 현대에만 시작된 것이 아니다. 이미 고려시대부터 전복은 ‘공물(貢物)’로 진상되던 바다의 보물이었다. 특히 전라남도 완도는 청정한 바다와 조류, 해풍, 그리고 해조류가 풍부한 바다 환경 덕분에 전복이 자라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완도는 고려시대부터 왕실에 전복을 진상하던 대표 지역 중 하나로 기록되었고,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약재, 혼례 음식, 제사상에까지 오르며 의례적·의약적 가치까지 지닌 귀한 해산물로 자리 잡았다. 『고려사』와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전복이 남해안 일대에서..

부산 기장 미역,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던 바다의 선물

미역은 왜 기장에서 귀한 음식이 되었을까? 바다와 궁중이 이어준 미역의 역사부산 기장은 오래전부터 ‘미역의 고장’으로 불린다. 그 이름에는 단지 지역 특산물이라는 의미를 넘어, 조선시대 궁중 수라상에까지 올랐던 미역의 역사적 품격과 문화적 의미가 함께 담겨 있다.‘미역국’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지만, 그 뿌리를 깊이 따라가 보면 궁중 의례와 해양 생태, 그리고 지역민의 손끝에서 비롯된 오랜 이야기를 품은 음식임을 알 수 있다. 그 중심에 바로 기장 미역이 있다. 기장의 해안선은 길고 완만하며, 조류가 빠르고 영양염류가 풍부한 청정 해역이다. 이 지역의 특수한 해양 환경은 미역이 자라기에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준다. 하지만 단순히 환경만이 기장 미역을 유명하게 만든 건 아니다. 조선 후기부터 기장..

전남 순천 매실, 고려 의학서에서도 언급된 해독의 과일

해독과 생명력을 품은 순천 매실, 단지 새콤한 과일이 아니었다전라남도 순천은 남도의 따스한 햇살과 해풍이 어우러지는 고장이다. 이 땅에서 자라난 매실은 빛깔이 선명하고 과육이 단단하며, 신맛이 진하다. 하지만 매실이 단지 새콤한 과일로만 여겨졌다면, 우리는 그 속에 담긴 진짜 가치를 놓치게 될 것이다. 순천 매실은 단지 입맛을 돋우는 음식 재료가 아니라, 고려 시대 의학서인 『향약구급방』과 『대관본초』에도 기록될 만큼 오래전부터 해독과 생명력의 상징으로 쓰인 대표적인 약용 과일이었다. 이 매실은 병을 다스리고, 음식의 부작용을 줄이며, 뱀독이나 식중독 등 각종 해독 작용에 널리 활용되었고, 남도 지방의 습하고 더운 기후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약과 밥 사이’에 있는 생활처방 그 자체였다. 특히 순천..

경북 청도 반시(연시), 씨 없는 감이 된 비밀 유전자의 기원

씨 없는 감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청도 반시에 담긴 유전의 비밀과 조선의 전통경상북도 청도에서 자라는 감, 특히 씨 없는 연시로 잘 알려진 ‘청도 반시’는 단순한 과일을 넘어선 깊은 역사와 유전적 비밀을 품고 있다. 대부분의 감이 씨를 품고 있는 반면, 청도 반시는 부드럽고 말랑한 과육 속에 씨앗 없이 단맛만을 남긴다. 이 특별한 특성은 단순한 돌연변이의 산물이 아니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져온 재배 기술, 청도 특유의 토양과 기후, 그리고 세대를 거쳐 씨 없는 감만을 선별하고 계승해온 농민들의 지혜가 더해져 만들어진, 인류와 자연의 공동작품이라 할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 『동국여지승람』 등 고문헌 속에도 청도의 감나무 과원이 언급될 만큼 이 지역의 감 재배 역사는 유서 깊으며, 유교적 예식에서 씨..

충북 단양 마늘, 험준한 산속에서 자라난 알싸한 역사

험한 산이 길러낸 알싸한 뿌리, 단양 마늘에 담긴 땅과 사람의 이야기충청북도 단양은 웅장한 소백산맥을 끼고 흐르는 남한강을 중심으로, 수려하면서도 험한 자연을 품은 고장이다. 이 지역은 농사를 짓기엔 만만치 않은 지형이지만, 그 거친 땅을 일구고 살아온 사람들의 손끝에서 자라난 한 작물이 있다. 바로 단양 마늘이다.이 마늘은 작지만 단단하고, 육질이 탱탱하며, 매운맛이 강하게 살아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알싸함이 혀끝을 자극하고 목을 타고 흐를 때, 우리는 단양이라는 땅이 품은 힘과 정직함을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단양 마늘은 단순한 지역 특산물이 아니다. 그 속에는 조선 후기 농서에 등장하는 산간 농업의 기록, 일제강점기 공출 작물로서의 역할, 민간 약초로서의 쓰임, 제례와 유교 문화 속에서의 의미가 ..

전남 진도 구기자, 고려시대 약초로 사랑받은 비밀

진도 구기자, 단순한 열매가 아닌 고려의 보약한국의 약초 가운데 ‘구기자’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고대부터 귀하게 여겨진 대표적인 보양 열매다. 특히 전라남도 진도에서 자라는 구기자는 색이 붉고 윤기가 흐르며, 맛이 달고 씹는 결이 곱다는 평가를 받아오고 있다.오늘날에는 차, 즙, 환 등 다양한 가공식품으로 소비되고 있지만, 진도 구기자의 진짜 가치는 그 뿌리를 고려시대에 왕실 약재로 사용되던 역사 속에서 찾아야 한다.진도는 단순한 재배지가 아니다. 기후와 토양, 해풍과 바닷물, 그리고 약초를 다뤄온 오랜 민간의 지식이 어우러진 천연 약초의 보고(寶庫)다.이 글에서는 전남 진도에서 구기자가 어떻게 재배되었고, 왜 고려시대부터 약재로 사랑받았으며, 오늘날까지 어떤 전통과 가치를 이어오..